아내가 교통사고로 떠난 뒤,
나는 장모님께 매달 65만 원씩 생활비를 보냈다.
그게 8년이었다.
나는 그 돈이 장모님 밥값이고 병원비라고 생각했다.
그래서 한 번도 늦춘 적 없고, 한 번도 빠뜨린 적 없었다.
장례를 다 치른 날이었다.
차에 올라 시동을 걸려는데 처남이 창문을 두드렸다.
“매형, 잠깐 올라오세요.
우리 그동안 돈 얘기, 한번 맞춰봐야겠어요.”
나는 별생각 없이 따라 올라갔다.
맞춰보자면 맞춰보면 되는 일이었다.
나는 8년 동안 꼬박꼬박 보냈으니까.
그런데 그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길이 참 답답했다.
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6층 빌라였다.
복도엔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고, 눅눅한 냄새가 올라왔다.
처남은 내 앞에서 말없이 걸었다.
등이 많이 굽어 있었다.
실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.
집 안은 그대로였다.
가구도 오래됐고, 소파 한쪽은 해져서 속 스펀지가 다 보였다.
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딱딱한 장부부터 눈에 들어왔다.
장모님은 글을 많이 아는 분이 아니었다.
그런데 돈 기록은 정말 꼼꼼했다.
내가 돈을 보낼 때마다 한 줄씩 꼭 적어 두셨다.
처남이 부엌에서 맹물 두 잔을 가져왔다.
앉지도 않았다.
그냥 천가방에서 은행 거래내역이랑 통장 하나를 꺼내서 내 앞에 차례대로 펼쳐놨다.
그리고 조용히 말했다.
“매형, 8년 동안 매달 65만 원.
전부 96번입니다.
합치면 6,240만 원이에요.”
나는 고개를 끄덕였다.
금액은 맞았다.
나도 다 기록해 두고 있었다.
그런데 처남은 내 말을 받지 않았다.
통장을 내 앞으로 밀더니 목이 잠긴 소리로 말했다.
“어머니는 이 돈에 한 번도 손 안 대셨어요.
매번 들어온 날 바로 통장에 넣으셨어요.
평소엔 연금 조금으로 버티시고, 가끔 박스랑 빈병 주워서 생활비 보태셨어요.”
“늘 그러셨어요.
매형도 애 혼자 키우면서 대출 갚느라 힘든데, 본인 때문에 더 부담 주면 안 된다고요.”
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.
통장을 집어 드는데 손이 떨렸다.
펼쳐보니까 입금 내역만 빼곡했다.
출금은 한 줄도 없었다.
마지막 장에 딱 찍혀 있었다.
6,240만 원.
거기에 이자까지 200만 원이 조금 넘게 붙어 있었다.
그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.
나는 그 돈이 장모님 생계비라고 믿었다.
당연히 그 돈으로 밥 사 드시고 병원 다니시는 줄 알았다.
그런데 장모님은 8년 동안 한 푼도 안 쓰셨다.
처남이 다시 서랍을 열더니 작은 철제 상자를 꺼냈다.
내 앞으로 밀면서 말했다.
“이것도 어머니가 꼭 드리라고 하셨어요.”
뚜껑을 여는 순간, 나는 더 말을 못 했다.
안에는 아이 주려고 모아둔 중학교 참고서랑 책들이 들어 있었다.
한 권 한 권 책비닐까지 씌워놨다.
새 책처럼 반듯했다.
처남이 말했다.
“어머니가 매형은 늘 바쁘고 야근도 많으니까, 아이 공부 못 챙길까 봐 걱정하셨어요.
글은 잘 모르셔도 저한테 서점 가서 중학교 전 과목 참고서 사오라고 하셨어요.
매형이 보내준 책이랑 같이 모아두셨고요.
아이 중학교 가면 다 쓰게 될 거라고 하셨어요.”
나는 그 상자를 한참 쳐다봤다.
눈이 바로 뜨거워졌다.
글도 잘 모르시는 분이
내 아이 공부를 그렇게 챙기고 있었다.
그런데 나는 어땠나.
매달 돈 보내는 것 말고는 먼저 전화 한 통 제대로 못 드렸다.
몸은 괜찮으신지,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, 그런 말도 자주 못 물었다.
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.
처남이 한숨을 쉬었다.
“매형,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러셨어요.
매형은 좋은 사람이라고.
누나가 그렇게 먼저 갔는데도 우리를 끝까지 챙겨준 사람이라고요.
그래도 이 돈은 꼭 돌려드리라고 하셨어요.
매형이 피땀 흘려 번 돈이니까, 아이 대학 보내고 나중에 큰일 있을 때 쓰라고요.”
그러고는 통장이랑 현금을 내 앞에 놓았다.
현금은 이자라고 했다.
은행에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.
나는 소파에 앉아 있는데 숨이 막혔다.
가슴 한가운데 돌덩이가 얹힌 느낌이었다.
나는 내가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생각했다.
솔직히 말하면, 가끔은 나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.
그런데 아니었다.
끝까지 이 집을 붙들고 있던 사람은 장모님이었다.
아무 말 없이.
티도 안 내고.
그렇게 8년을 버티신 거였다.
내려가는 길에 처남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.
“매형… 이 집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, 나중에 제가 결혼하면 쓰라고 하셨어요. 그래서…”
나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.
이 집은 내가 아내와 결혼할 때 마련한 집이었다.
명의는 아내 앞으로 돼 있었고, 아내가 떠난 뒤엔 장모님이 계속 살고 계셨다.
나는 처남 어깨를 툭 쳤다.
“원래 네가 가져야 할 집이야.
네 누나 없다고 우리가 남 되는 거 아니다.
넌 내 동생이야.
내가 올라가면 바로 명의 이전 알아볼게.”
처남 눈도 바로 붉어졌다.
고맙다는 말만 계속했다.
그런데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.
내가 놓치고 산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.
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정도 식는다고 말한다.
그런데 장모님은 아니었다.
그분은 8년 동안 식지 않는 마음을 통장에 그대로 쌓아두고 가셨다.
그 돈은 결국 받지 않았다.
처남한테 다시 넣어두라고 했다.
나중에 자기 아이 키울 때 쓰라고 했다.
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부동산부터 찾았다.
집 명의 이전부터 준비했다.
가족은 원래 그런 거라고, 나는 그제야 알았다.
말로만 남는 게 아니라
끝까지 서로를 놓지 않는 거였다. | IP Hash : d22961fd0ae99c98304ba021ebc90f5a Capacity : 5601bytes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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